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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 대멸종이 진행 중인 지금, 독자의 세계를 넓히는 책

관리자 2026-05-18 조회수 75

[김성호의 독서만세 315] 캐럴 계숙 윤 <자연에 이름 붙이기>



과학자들이 내게 말했다.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라 포유류라고. 그래, 그렇구나 했다.


과학자들이 내게 말했다. 물고기는, 얼룩말은, 나방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래, 그렇구나 했다.


과학자들은 내게 말했다. 공룡은 멸종하지 않았다고. 새가 바로 공룡이라고 말이다. 그래, 그렇구나 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고래는 물에 사니 물고기가 아닌가. 낚시를 가서 낚이는 여러 동물은 하나 같이 조금씩 다른 물고기들이다. 전등을 향해 달려드는 저 많은 것들도 대개는 나방이다. 아프리카 대륙 사파리를 뛰어다니는 얼룩무늬 확실한 말은 역시나 얼룩말이다. 그리고 새는, 도무지 공룡은 아닌 것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2023년 10월 출간)를 읽은 건, 아마도 이 책을 집어든 대다수 독자가 그러 했듯, 그 유명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덕분이다. 과학기자 출신 룰루 밀러의 베스트셀러는 분류학을 충격에 빠뜨린 분기학자(진화적 관점에서 앞서 적은 물고기도, 얼룩말도, 나방도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한 이들이다)들의 발견과 스탠퍼드 대학교 초대 학장이자 당대 분류학의 거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비위를 엮는 기발한 발상에서 쓰였다. 저자가 스스로 언급한 바,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태어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저술이다(관련기사 : 옳다고 믿는 모든 게 틀릴 수 있다... 학자의 확신이 낳은 비극).


내가 이 책을 집은 건 그저 이 뿐만은 아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해소되지 않는 의문과 아쉬움이 짙게 남았기 때문이다. 책이 비판하는 인물의 비위와 그의 학문적 성취가 깨어져 나간 오늘의 상황을 동치 시켜 엮어내는 선택이 작위적으로 느껴진 것도 이유가 됐다. 분기학에 의해 기존 분류학의 비정들이 비과학적(그러니까 잘못된 것)이라 판명됐다 해서 그건 완전히 틀린 것이었을까. 존재하지 않는 물고기를, 그러나 존재한다 믿었던 믿음이 온전히 무용한 것일까. 근간이 된 <자연에 이름 붙이기>가 적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하려 한 이유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다행하며 옳은 것이었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해온 방식


분류학(그로부터 파생된 수리분류학자들, 분자생물학자들, 분기학자 등을 포괄해 지칭)의 방식과 역사를 다루는 책이다. 애초에 이를 의도하고 집필한 작업이니 당연한 것이겠다. 그러나 이 책의 훌륭함은 이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저자 스스로 서두에 언급하듯, "도달하리라 예상했던 곳도 그러기를 원했던 곳도 아니"었던 곳에서 비롯된다. "과학이 생명의 세계를 분류하고 명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유일하게 타당한 방법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심지어 자신 보다 먼저 그를 인지하고 발달해온 흐름이 있었음을 알아챈 데서 이뤄진다. 책은 과학과 그에 반해 배척돼온 인간 고유의 시각에 대한 저술로 진화한다.



움벨트와 과학은 왜 그렇게 철저히 상반되는 것일까? 움벨트는 어느 모로 보나 우리 인간 종이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시절에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굴에서 살던 사람들이 걸어서 탐험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세계의 한 조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움벨트이니, 전체 지구의 종들을 이해하기 위해 현대의 과학자가 해야 하는 일에는 쓸모가 없거나 심지어 방해가 된다. 그리고 움벨트는 생명과 자연의 질서를 명쾌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 시각은 객관성이나 기나긴 세월에 걸친 진화적 변화, 과학적 엄밀함이나 가설 검증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전혀 알지도 못한다. 사실 자연의 질서에 대한 움벨트의 시각은 과학의 진화적 생물 분류와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움벨트는 철저하게 감각적이며 극도로 주관적이다. -38p



책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움벨트'다. '환경'을 뜻하는 독일어지만, 과학자, 특히 동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개별 동물종이 감각으로 인지하는 세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쉽게 표현해 보겠다. 인간이 이해하는 세상은 과학으로 증명된 실재하는 세계의 일부다. 인간은 가시광선과 가청 음역대 범위 안에서 세계를 지각한다. 이해하는 범위는 그보다도 좁다. 감각과 이해가 세계의 범위이니 인간이란 종(개체마다도 다를 테다)의 세계란 실재의 일부일 뿐이다. 개는 인간보다 저채도의 세계를 보지만 훨씬 풍부한 후각을 가졌다. 벌이 자외선을, 일부 철새가 자기장을 시각으로 본다는 사실은 증명된 지 한참이다. 박쥐, 돌고래 등 가청 범위를 넘어선 음파로 소통하는 동물도 숱하다. 그들이 감각하고 이해하는 세계가 인간의 것과 같지 않다. 인간의 세계 너머를 인식, 인지하는 존재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책은 움벨트의 비극과도 같다. 칼 린넨이라 널리 알려진 칼 폰 린나이우스의 시대가 그 시작점이 된다. 과학이라곤 모르는 당대 명사들부터 과학계에 몸담은 이들까지 배웠다 하는 이들 다수가 분류학에 열을 올리던 때다. 동물을 박제하고 곤충을 침에 꼽아 형태를 보존하며 진열하는 일과 과학은 그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책은 초기 분류학이 기독교 창조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었음을 넌지시 내비친다. 생명을 포함한 만물은 신이 창조한 독자적 존재로 그를 더 많이 아는 것이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생명의 배치엔 질서가 깃들어 있는 듯했다. 이제는 상식이 된 린나이우스의 생명 분류법, '종·속·과·목·강·문·계'가 나온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은 린나이우스 같은 남보다 더 발달한 움벨트 인식력을 가진 이들이 세상 모든 생명을 포집해 제 위치 아래 두는 작업을 이어왔음을 보여준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게 되기까지


그러나 그 시대가 곧 위기에 봉착한다. 앞선 시대의 적자였으나 곧 처단자가 되는 찰스 다윈의 등장부터다.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들을 포집하려 떠난 '모험가' 다윈은 오늘날 '진화론'을 제시한 <종의 기원>의 저자로만 알려져 있으나 그게 그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책은 모험가가 과학자가 되기까지, 흔히 언급되지 않는 현미경으로 따개비만 들여다본 10여 년의 시간을 알린다.



다윈 이전에 진화적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을 제안했던 소수의 인물들은 가장 높은 존경을 받는 과학자들에게 조롱을 당했고, 성공회 지도자들에 의해(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십자가에 못 박혔다. 다윈은 자기도 그보다 더 따뜻한 반응을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종 작업이 "…출판된다면, 나는 모든 견실한 박물학자들에게 영원히 업신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것이 미래에 대한 나의 전망"이라고 했다. -99p



다윈은 자신이 구해온 종들 사이의 분명해 보이는 공통점들 사이에서 아주 약간의,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작은 차이점들을 발견한다. 기존 분류 체계에 넣을 수 없는 미묘한 개체들로부터 출발한 작업은 역시 이제는 상식이 된 '생명의 나무'로 이어진다. 창조가 아닌 진화다. 생명은 느리지만 분명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다시 책은 아이디어, 때로는 기술 발전에 힘입어 등장한 분류학의 후예들을 비춘다. 수리분류학, 분자생물학, 분기학에 이르는 일련의 학자들이 나타나 전대의 분류학을 낡은 것으로 만들어가는 혁명,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테러 같은 일을 일으키는 과정을 보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데이비드 스타 조던 또한 그랬듯, 그 모든 수고 대부분이 '틀린'것으로 판명되고 폐기된다.



물고기는 정말 존재하지 않는가?


그러나 <자연에 이름 붙이기>의 훌륭함은 역사에서 멈추지 않는단 점에 있다. 움벨트가 과학에 배척된 역사를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움벨트의 가치를 발굴한다. 다윈에게도, 후대 등장한 분류학의 세부 분과들에게도 과학적 이해에 방해가 되어왔다고 판명이 난 듯했던 움벨트가 이 시대에 과학 만큼, 어쩌면 과학보다도 유효할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는 생명의 분류와 명명을 전문가들에게 맡겨 버렸다. 그런 건 과학자들이 제일 잘 아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어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재밌게도 그들은 새들이 공룡이라는 소리까지 한다. 뭐, 좋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 초파리들이 겉보기엔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태곳적에 분리된 별개의 종들이라고, 그리고 이 새 둘은 아주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종이라고 말한다. 아무렴. 우리가 뭐라고 그런 말에 토를 달겠는가? 그리고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하겠는가?



원래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 생명에 대한 더 깊은 과학적 지식은 생명 세계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과학과 상식을 조화 시켜야 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우리가 생명의 진화적 분류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면 "과학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서로 일치하게 될 것"이라 예언했다. 하지만 과학의 진보는 언어의 일치나 상호 이해의 증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375, 376p



주지하다시피 지금 이 시대엔 6차 대멸종이 진행 중이다. 지구에 5차례 있었던 대멸종보다도 훨씬 더 많은 종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과학은 이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고 막아내지도 못했다. 저자는 한 걸음 나아가 과학적 세계관이 일부 책임이 있음을 전한다. 과학이 얼룩말, 나방,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단 사실을 밝혀냈대도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그 사이 평범한 인간은 제 앞에 놓인 풀의 이름을, 과거 누구나 알고 있었을 그 식물의 이름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움벨트의 쇠락은 명징 하다. 저자는 심지어 인간 내면의 움벨트가 자본주의, 특히 브랜드와 로고를 식별하고 이해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을 수호할 수 있는 움벨트가 자본주의의 하수인이 돼 그를 파괴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이 대목에 대한 논리 전개며 해석 또한 탁월하니, 귀 기울일 이유가 있다.



세계를 확장하고 이해를 깊게 한다


한국서 널리 읽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이 책 가운데 분기학이 이전 시대 분류학을 파훼한 사건을 가져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학자의 몰락을 극대화했다면, 이 책은 그 너머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개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비위와는 별개로 그의 학문적 수고며 성취가 비하 돼선 안 된다. 그건 별개의 문제다. 인간의 마땅한 본능과 재능이 그곳에 있고, 어쩌면 오늘의 위기로부터 세계를 구할 비기 또한 담겨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훌륭한 책이다. 책이 가진 미덕이 읽는 이의 세계를 흔들고 확장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그러하다. 처음 쓰고자 한 것이 아닌 곳에 당도한 저자가 자신에게 닥친 깨달음을 독자 앞에 전한다. 나는 그것이 지혜로움이며 진실과 닿는다 여긴다. 읽는 내내 알 인(認)자를 쓰는 두 단어, '인식'과 '인지'를 생각했다. 누구나 세계와 관계를 맺을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이것이다. 인식하고 인지하는 범위가 곧 우리의 세계다.


그저 자연, 과학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엄연히 존재하고 누구는 이해하는 걸 다른 누구는 감각조차 못한다. 서로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게 인간 사이만일까. 인간과 문명의 세계가 얼마만큼 비좁은가를 깨닫는다. 다른 종의 세계를 하나하나 부순 인류가 급기야 스스로조차 배신하려 드는 오늘이다. 인식하고 인지하는 이는 비명을 지르는데, 어리석은 이들은 호들갑이라 한다. 감탄하고 반성한다.